사생아로 시작된 삶
잡스의 생모는 대학원생인 미혼모였다. 그녀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입양을 결정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혼모 혼자의 힘으로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잡스의 생모는 아들의 양부모가 대학 나온 사람이길 원했고, 자기 아들 또한 대학까지 교육받길 원했다.
하지만 그녀가 미혼모가 되길 원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들을 입양시키기 위한 상황도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결국 잡스는 평범한 노동자 집안으로 입양되었다. 물론 양부모는 그를 대학까지 교육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훗날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 연설에서 바로 그 입양의 순간에 자신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고백했다.
잡스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은 그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말한다. 고집 센 외톨이였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다. 그런 성격은 성인이 된 후에도 고스란히 나타나 동료들과 충돌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확실히 잡스는 여럿이 협력해야 하는 일에는 소질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그는 때로 선생님에게 대들기도 했고,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하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훗날 잡스는 학교생활이 매우 따분했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말썽 많은 잡스에게 한 선생님은 숙제를 다 하면 5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잡스는 그 선생님을 자신의 인생에서 매우 고마운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자신에게 무언가 배우겠다는 열정을 갖게 해줬기 때문이다.
그의 어린 시절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청소년기부터 전자기기에 관심이 매우 많았다는 것이다. 주변 환경 또한 각종 전자기기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잡스처럼 또래 친구들과 잘 사귀지 못하는 아이에게 전자기기는 훌륭한 장난감이었다. 전자기기 하나만 있으면 아버지 차고에 들어가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또래 친구들은 잡스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잡스는 고등학생 시절 마리화나도 피웠다. 그리고 그때쯤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청소년기에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그 충격은 절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또래의 사춘기 청소년들처럼 성에 눈뜨기 시작했다.
잡스의 그런 성향은 애플을 공동으로 창업한 스티브 워즈니악과 곧잘 비교된다. 워즈니악은 술도 잘 안 마시는 사람이었지만, 잡스는 마약과 정신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히피였기 때문이다. 10대 때 그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기르고 히피들과 어울렸다.
또한 그는 워즈니악과 함께 전화 회사의 컴퓨터를 속여 공짜 전화를 걸 수 있는 기계를 만들기도 했다. 잡스는 그때의 경험이 매우 황홀했다고 말한다. 잡스나 워즈니악에게 전화 회사는 무언가 못마땅한 '기성세대'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그런 전화 회사를 속이는 일이 그들에게는 매우 신나는 경험이기도 했을 것이다.
6개월 동안의 대학 생활 그리고 자퇴
스티브 잡스는 양부모의 집에서 성장해 1972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 칼리지라는 대학에 입학했다. 등록금이 비싼 사립학교였지만 인문대학으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비싼 학비가 마음에 걸렸지만 양부모는 그를 대학까지 교육시킨다는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잡스는 6개월 만에 대학을 자퇴하고 만다. 평범한 노동자인 부모가 자신을 위해 엄청난 금액의 등록금을 낸다는 사실이 무척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또 6개월 정도 학교에 다녀보니 대학 교육이라는 게 부모가 평생 모은 재산을 쓰면서 다닐 만큼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잡스는 그때 학교를 그만둔 것이 자기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학교를 자퇴하기로 결정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학교를 바로 떠난 것은 아니었다. 1년 반 정도 학교에 머물면서 지금으로 말하자면 도강을 한 것이다. 학교는 그만둔 상태였기 때문에 듣고 싶은 수업만 골라 들을 수 있었다.
그때의 경험은 훗날 그가 창립한 애플에서 만든 매킨토시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비록 그만둔 학교였지만 리드 칼리지는 당시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실시했다. 학교 곳곳에 붙어 있는 각종 포스터와 다양하게 디자인된 상품들, 그리고 손으로 직접 쓴 글씨들. 정식 대학 과정은 단 6개월 만에 끝냈지만, 그곳에서 2년여 동안 머문 경험은 애플에서 컴퓨터를 만들 때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매킨토시에 그렇게 다양한 서체가 담길 수 있었다.
잡스가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1960~70년대 미국은 물질적으로 매우 풍족했던 시기다.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자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에서 눈을 돌려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잡스는 그런 시기에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다. 잡스는 대학에 다닐 때 한동안 동양 문화에 빠져들기도 했다. 동양철학에 나오는 카르마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인도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관심을 둔 마약 대신 동양철학이 그의 주요 관심사가 된 것이다.
대학을 중퇴한 후 한동안 캠퍼스에 머물던 그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집에서 백수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아타리라는 회사의 구인 광고를 보고 무작정 찾아간다. 아타리는 비디오 게임을 만드는 회사로, 그 당시 실리콘밸리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있었다.
무작정 찾아갔지만 신기하게도 즉시 채용되었다. 잡스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을 것이다. 긴 머리, 허름한 옷차림의 히피였던 잡스를 보고 아타리의 채용 담당자가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잡스가 가진 가능성과 일에 대한 열정을 발견한 것일까? 어쨌든 비록 밤에만 일한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잡스를 채용한 것이다.
고집 있고 대범한 스티브 잡스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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