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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웰치의 입사 이후 승승장구 이야기 - 잭 웰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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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웰치의 입사 이후 승승장구 이야기 - 잭 웰치 2

by 인포하이브 2022. 7. 12.

1960년 GE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잭 웰치는 사내에서 한가한 직원으로 분류되던 플라스틱 사업 부문에 배속되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일은 플라스틱 합성 재료를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리노이 대학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덕분에 그는 전공에 적합한 전문지식을 가진 연구자로서의 직업을 가졌습니다.

입사 1년 차 잭 웰치는 열심히 일했고 결국 잘 해냈습니다. 하지만 잭 웰치는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스럽고 거대한 관료적인 분위기, 세 명의 근면한 사람들과 일하지 않은 사람들이 팀이라는 이유만으로 보너스를 균등하게 분배하는 불합리한 임금 시스템 때문에 입사한 지 1년 만에 사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GE 내부에서는 전기, 전자, 기계공학 전공이 주류이며 GE를 타이트한 성으로 바꾸었습니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플라스틱 연구자에게 답답한 것은 관료적인 조직문화였습니다. 재능의 유일한 선택은 후회 없이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잭웰치는 해상도를 정사각형으로 되돌린 거죠? 그리고 40년 이상 GE에 머무르는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은퇴 직전 그를 잡은 것은 잭 웰치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입사원인 잭 웰치에게 눈을 번뜩이고 있던 루벤 구토프라는 이름의 고위 관리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잭 웰치를 설득하며 "GE에서의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를 돕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젊고 고집 센 신입사원의 앞날을 위해 그는 또 새벽 1시에 공중전화로 사임을 말리고 차를 2시간 동안 길거리에 둔 채 두었습니다. 대기업 고위관리직과 신입사원 사이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어요. 그것은 또한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문화가 보급될 당시 GE에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회사의 역사를 바꾼 것은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구토프는 잭 웰치를 붙잡고 결과나 개별 퍼포먼스에 맞춘 차별화된 보너스가 아닌 프로세스에서의 관료적 간섭을 배제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잭 웰치는 상사가 남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그를 판단했고 시카고로 날지 않고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명받았습니다. 구토프의 제안과 잭 웰치의 요구와의 접점은 그 차이였습니다.

이후 차별화는 잭웰치의 기본적인 관리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다르게 다루는 차별화는 사람들의 사기를 꺾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잭 웰치는 그 반대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공평하고 엄격하게 적용할 수 있는 한 차별화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교두보이자 중요한 재능을 발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장으로 취임한 잭 웰치는 차별화를 통해 최종적으로 GE를 세계 최강의 팀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최악의 플레이어가 쫓겨났고 최고의 플레이어에게 최고의 보상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차별화는 GE의 성공에 필요한 단계였습니다.

"잭, 나보다 빨리 승진해서 GE의 관료기구를 고쳐줬으면 좋겠어."

잭 웰치는 구토프의 지원에 감명을 받아 매니저는 직원의 꿈과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코칭이 필요하며 직원들은 무기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스트레칭할 필요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이는 매니저가 미래에 가져야 할 4E 리더십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Gutoff의 리더십을 유지하기로 결심한 잭 웰치는 처음에는 솔로 프로젝트를 통해 최고의 결과를 달성했습니다. 이후 그는 새로운 연구팀의 멤버를 한 명씩 고용해 그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플라스틱 제품을 개발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잭 웰치는 열정을 가지고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사업 전체와 상사 구토프에게도 최고의 결과가 초래됐습니다. 본사 간섭이 적은 플라스틱 사업부문은 관료적인 문화에서 탈출하고 싶은 잭 웰치의 자유분방한 아이디어와 자기계발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플라스틱 사업에 있어서 잭 웰치만의 경영 스타일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성공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사업 부문에서 신제품을 개발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던 잭 웰치는 큰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그가 3년차 취업에서 이미 연구 디렉터로 승진한 것은 1963년 봄날이었습니다.

그가 담당하던 피츠필드 공장 실험실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화학 실험 중 공기 중에서 불꽃이 발생하여 휘발성 용액에서 산소 거품이 발생했을 때 폭발했습니다. 다행히 그것은 사망 사고는 아니었지만 폭발로 인해 인근 공장이 전소되어 막대한 재산 손실을 야기했습니다.

다음날 사건으로 사실조사위원회에 출석한 잭 웰치는 GE 고위 간부 앞에 서 있었습니다. 잭 웰치는 사건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사업을 계속하도록 설득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먼저 폭발의 원인과 해결책을 설명하고 다음으로 표현할 그의 미래 계획을 편집했습니다.

"PPO 관련 제품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실험 중에 일어났습니다. 고온에서 휘발성 재료를 다루면 언제든지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미 예방책이 있습니다. 글로벌에서 기능하는 경쟁력 있는 제품을 개발하였습니다. 시장에 나와 있으며 기술 검증의 최종 단계에 있습니다. 팀을 해산시키거나 개발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잭 웰치의 말을 듣던 GE의 이그제큐티브 찰리 리드 씨는 "나중에 대량생산에 문제가 있었다면 더 심했겠지만 실험 중에 이 문제들을 미리 알아서 다행입니다. 연구원들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은 안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리드의 이해는 눈부셨습니다. 리드는 감정이나 분노가 아닌 합리적이고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잭 웰치의 아찔한 마음이 사건을 잘 마무리하기를 장려했습니다. 리드와 다른 GE 간부들의 배려와 격려에 다시 격려를 받으면서 잭 웰치는 자신감을 되찾았고 연구실에서 함께 일하던 팀원들과 협력해 연구를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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