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웰치는 또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강해지는 팀워크를 실현했습니다. 최고의 퍼포먼스를 달성하려면 강력한 팀워크가 필수적이지만 팀워크는 경쟁을 통해 강화할 수 있습니다.
또 위기관리의 중요성도 이해했습니다. 달성할 수 있는 목표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성능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하거나 최소화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기관리에 관한 이 생각은 잭웰치의 성공에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 이 회사는 GNP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GE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잭 웰치는 새로운 PPO 제품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았어요. 잭 웰치 팀에 의해 개발된 PPO 제품은 고온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열되어 갭을 야기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잭웰치는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을 제거하지 않고 상품화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밤낮으로 6개월간의 조사를 실시한 결과, 드디어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이것은 PPO로 저비용 폴리스틸렌과 일부 고무를 합성하는 방법이었습니다. Noril이라는 이름의 합성 재료는 미래에 연간 매출액이 10억달러를 넘는 성공한 제품이 되었습니다. 이 사업은 결국 GE의 플라스틱 사업을 대표하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었습니다.
잭 웰치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어요. 그는 신제품 개발과 연구를 위해 창조적인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이 때, 시장에서 조우할 가능성이 있는 다양한 위기 요인의 검증 작업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의욕과 함께 위기 요인을 준비하고 방지하기 위한 그의 노력을 잊지 않았습니다.
최종적으로 잭웰치는 1968년 입사한 지 8년 만에 32세에 2600만달러짜리 플라스틱 사업을 이끌도록 승진했습니다.
당시 GE는 일본 기업의 적극적인 시장 침투 전략으로 전력, 전자기기, 기계와 관련된 다른 사업 부문의 수익성을 급속히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 사업 부문은, 공산품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소비자 제품의 개발에도 성공했습니다. 이는 소비재 시장을 개척하고 선도하는 최초의 제품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 사업은 1920년 창사 이래 방송과 옥외광고를 통해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전략을 통해 최고의 실적을 올려 가장 중요한 사업이 되었습니다.
엘리트 기업 GE에는 기존의 CEO 트레이닝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다양한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가지고 경험 있고 혁신을 이끌 수 있는 CEO 등의 인물을 선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1975년 잭 웰치는 플라스틱 사업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다음 CEO 7명의 후보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관료적인 GE의 누구도 전기, 전자기기, 기계의 핵심 비즈니스에서 오지 않은 잭 웰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때 잭 웰치의 뛰어난 위기관리 기술은 돋보였습니다. GE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력 및 전자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다른 후보자들과 달리 잭웰치는 전혀 다른 제안을 했습니다. GE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안전성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를 위해서는 재무와 제조의 조합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GE크레딧은 집중 육성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일본 기업의 치열한 공격에 의해 고비용과 저성장에 사로잡혀 있던 GE에 있어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장래에 있어서 가장 안전한 지원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전략은 많은 이사들이 그를 차기 회장 후보로 인정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잭 웰치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가 플라스틱에서 온다는 사실은 한계적인 비즈니스였고, 그래도 결정적인 장애였습니다. 차기 대통령만의 도전과 경쟁은 아무도 그것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피를 말리는 것이었다.
1979년 1월 비행기에서 존스는 다음 대통령 후보인 잭 웰치에게 이상한 질문을 했습니다. "이 비행기가 추락하고 당신과 내가 죽으면 다음 GE 대통령은 누가 될 것 같습니까?" 잭 웰치는 대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틀림없이 비행기 추락 사고를 극복하고 GE의 의장을 이어갈 것입니다."
6개월 후 존스는 비행기에서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이 비행기가 추락하고 내가 죽고 당신이 무사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번에도 잭 웰치의 대답은 솔직했습니다. "저는 곧 비어 있는 GE의 의장을 맡을 것입니다." 그래서 잭 웰치는 다음 회장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그렇게 됩니다.
최종적으로 존스의 신뢰를 얻은 잭 웰치는 1981년 46세의 나이로 GE의 새 회장이 되었습니다. 잭 웰치의 바람과 꿈은 실현되었습니다.
하지만 GE의 미래는 잭 웰치에게 맡겨졌습니다. 불확실했습니다. 취임사에서는 108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의 대기업 GE가 삼류에 빠지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사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성장은 둔화되고 외부 경쟁력은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업의 쇠퇴 조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 있는 엘리트 조직인 GE는 현실을 위기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 비대해진 조직은 그 자체로 위기를 극복하기는 불가능해 보였고 개혁에 대해 침묵을 지켰습니다.
1981년 입사 이래 21년 만에 최고가 되겠다는 그의 꿈은 실현됐지만 새로운 거대한 시련이 그를 방해했습니다. 이 심각한 위기 속에서 잭 웰치는 GE를 바꾸고 세계를 바꾸는 개혁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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